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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28, 우크라이나 리비우 12: 예술의 향연에 빠져들다(20190630)

경계넘기 2019. 8. 5. 19:03

 

예술의 향연에 빠져들다

 

 

리비우(Lviv)에서 이렇게 예술의 향연에 빠져들 줄은 몰랐다.

 

오늘 하루 난 세 개의 훌륭한 공연을 봤다. 그것도 장르가 각기 다른 오페라, 발레 그리고 재즈 공연. 한국이었다면 오늘 하루를 위해서 수십만 원을 지불해야했을지도 모른다.

 

하루에 각기 다른 장르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어디든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는 곳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예술적으로 아르메니아 예레반(Yerevan)과 이곳 우크라이나의 리비우가 그렇다. 예레반은 처음으로 유럽의 클래식 공연을 맛보게 해주었고, 이곳 우크라이나 리비우는 처음으로 클래식이 주는 성찬에 빠져들게 해주었다. 내 인생에서 예레반이나 리비우 모두 예술로 남을 도시들이다.

 

아침부터 실시간 뉴스를 보려고 하는데 인터넷 사이트가 영 받쳐주질 않는다.

 

트럼프가 판문점에 방문해서 김정은과 만난다고 해서 그 역사적인 현장을 보려는 것이다. 자주 끊기는 인터넷을 달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트럼프가 만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지난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다시 냉각기로 접어드나 했는데 이런 갑작스런 이벤트로 다시 협상의 길로 들어섰다. 5분 정도 담소나 나눌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자유의 집에서 북미 정상회담도 53분간이나 진행되었다.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제3차 북미회담이다.

 

물론 즉흥적이라는 말은 다소 어폐가 있을 수 있다. 트럼프의 트윗 한 방으로 일어난 행사이긴 하지만 아마 사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며 그 중 하나가 트윗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트윗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고군분투했을 남북미 실무진들의 노고야 말해 무엇하랴.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서 다시보기로 뉴스를 보니 회담을 마치고 남북미 정상들이 함께 자유의 집을 나설 때의 김정은의 얼굴은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처음 트럼프와 만나서 자유의 집을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긴장한 얼굴빛이 역력했는데 말이다. 그 얼굴 표정이 회담의 성공뿐만 아니라 앞으로 남북, 북미 관계를 암시하는 것 같아서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몸은 멀리 타국에 있지만 한반도의 기쁜 소식은 타국에 있는 나까지도 춤추게 만든다.

 

남북미 정상들이 자유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만 보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리비우에 와서 입맛이 다시 사는 모양이다. 긴장이 조금 풀어졌다는 것이다.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면 몸이 긴장해서 입맛을 잃는다. 그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데 여기서 쉬어간다는 것을 몸이 아는 것이다. 꽤 식사를 하는데도 배가 금방 고파진다. 자주 가는 카페테리아 식당에 갔는데 배가 고프다 보니 몇 가지 고른다는 것이 또 하나 가득이다. 거기다 맥주까지. 배는 고파서 음식을 많이 주문하지만 이미 적절하게 줄어든 나의 위장은 그 많은 음식을 담기가 어려워진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힘들게 담은 음식을 먹었다.

 

오페라하우스로 간다.

 

오늘은 공연이 두 번 있다. 오늘만 그런데 정오에 오페라 공연이 있고, 저녁에는 지난번에 본 발레 해적의 공연이 있다. 이미 오늘 오페라 공연티켓은 가지고 있지만 저녁의 발레 공연 티켓도 샀다. 공연이 재미있었던 관계로 한 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번째이니 싼 티켓으로.

 

정오의 오페라 공연은 우크라이나 오페라. 작곡가이자 오페라 배우이기도 한 Semen Stepanovich Hulak-Artemovsky이 만든 우크라이나 코믹 오페라라고 한다. 제목은 ‘The Cossack in the Exile’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A Zaporozhian(Cossack) Beyond the Danube’라고도 한단다.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오페라로 보인다. 이름이 전혀 검색되지 않는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망명 중인 코사크(카자크)’, 다른 이름은 댜뉴브 강 너머의 코사크(카자크)정도 되려나. 코사크(카자크)인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일대와 러시아 서남부에 사는 슬라브인을 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들이 러시아의 압제를 피해 다뉴즈 강 근처의 오스만 제국 지배 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슐탄의 허가를 받는 과정을 그린 오페라라고 한다.

 

 

 

32시간의 공연은 다소 지루했다.

 

지금까지 본 오페라 중에서 일반 대사가 가장 많았던 오페라다.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가 많다 보니 조금 더 지루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오페라는 무대 변화가 없어서 더욱 지루하게 느껴진다. 지루하다 보니 졸음이 몰려와서 집중하기 더욱 힘들었다. 졸음이 오는 이유는 공연이 지루한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공연 전에 식사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지루한 오페라 공연에 식곤증까지 밀려오니 힘들 수밖에 없다. 2시간 공연에 3막이라 1막이 30분 만에 끝났다. 달랑 30분 공연보고 15분 휴식이다. 덕분에 그나마 휴식을 가지면서 졸음을 쫓긴 했지만.

 

오페라를 보고 바로 재즈 공연장으로 간다.

 

오페라를 보고 바로 시의회 광장으로 간다. 오후 3시부터 거기서 재즈공연이 있다. 일찍 가야 좌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서서 보는 것은 힘도 들지만 시야도 많이 가려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3시 공연을 2시 조금 넘어 갔는데도 자리는 맨 끝자리 몇 개만 남았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얼른 자리 확보하고 앉아서 공연을 기다린다.

 

리비우는 지난 금요일부터 재즈 페스티벌을 하고 있다. 시내 곳곳에 공연장이 있는 것 같은데 시 중심인 이곳 광장에도 무대가 마련되어서 오후에 두 번의 공연을 하고 있다. 매번 늦게 가서 서서 듣곤 했는데 마지막 날인 오늘만은 제대로 구경을 하고 싶었다.

 

3시에 공연은 시작했다. 이번 팀은 터키에서 온 재즈팀이었다. 노래는 없고 연주만 한다. 피아노, 전기기타, 더블 베이스 그리고 드럼이 한 팀을 구성하고 있다. 가끔 재즈 공연을 본 적이 있지만 이처럼 제대로 완전한 공연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즈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음악. 솔직히 재즈 페스티벌이라고 하니까 이 공연이 재즈인 줄 알지 모르고 들었다면 이게 재즈인지도 모를 것이다.

 

처음 몇 곡들은 졸음이 나올 정도로 느리고 부드러운 음악. 뒤로 갈수록 힘 있고, 빠른 템포들의 음악이 나와서 흥이 났다. 연주가 끝나면 이곳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계속 박수를 친다. 앵콜을 외치지는 않지만 앵콜 공연을 요구하는 것. 그러면 퇴장했던 연주자들이 다시 나와서 앵콜 공연을 하고 나서야 공연은 진짜로 끝난다.

 

 

 

430분에 공연이 끝났다. 여기서 조금 기다리면 5시에 다른 팀의 공연이 있지만 일어난다. 6시에 오페라하우스에서 발레 해적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조금 쉬기로 한다. 아울러 오늘 판문점 이벤트의 결과도 궁금하다. 한국은 9시 뉴스가 끝난 시간이니 쉬면서 다시보기로 뉴스를 볼 생각이다.

 

앞서 말했듯이 뉴스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한미일 정상이 자유의 집에서 걸어 나올 때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빛이 너무 좋았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을 모두 보상 받은 듯한 표정이다. 트럼프를 사이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인다. 항상 느끼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큰형과 막내 동생과 같은 모습이다.

 

공연도 좋았지만 한국에서 오는 소식 역시 좋으니 공연을 보는 나도 더욱 흥이 난다.

 

저녁에 보는 발레 해적은 리비우에서 두 번 보는 것이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 같다. 발레 공연 자체가 재미도 있지만 화려하고 신나는 해적자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발레 공연은 만석이다. 확실히 발레 공연은 오페라에 비해서 적기도 하지만 재미있어서 그런지 빨리 찬다.

 

두 번 보는 공연이지만 지루한 점이 전혀 없다. 오히려 두 번 보는 것이라 이해도 잘 되어 더욱 흥미로운 것 같다. 어쩌면 좋은 공연은 보면 볼수록 더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훌륭한 공연들은 수백, 수십 년이 지나도 계속 공연이 되는 것이리라.

 

 

 

하루 세 개의 공연을 모두 마치고 나오는데 가슴 속에 가득 찬 포만감과 함께 머리도 무거워진다. 박물관을 하루 종일 열심히 보고 나오면 드는 그런 느낌이랄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 종일 공연을 보느라 알게 모르게 머리도 노동을 많이 했나 보다좋은 공연으로 하루를 다 채운 날이다. 정오에는 오페라, 낮에는 재즈, 저녁에는 발레. 리비우에서 클래식의 향연에 빠진 6월의 마지막 날이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4일을 더 연장했다. 4일 동안 세 번의 공연을 볼 수 있는데 두 번은 오페라, 한 번은 발레 백조의 호수. 주말에도 2편의 오페라가 있어서 다음 주 월요일에 가고 싶은데 그러면 프랑크푸르트 친구 집에 너무 늦는 것 같아서 일단 이번 주 금요일에 가기로 한다.

 

오페라하우스 공연 일정에는 이번 주 일요일까지만 있고 다음 주 공연 프로그램이 없다. 여름 시즌 공연이 이번 주 일요일로 끝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그 시즌 기간에 넘어온 것이다. 덕분에 체류하는 동안 많은 공연을 보고 간다.

 

그나저나 다음 주 월요일에 움직이면 두 번의 유명한 공연을 더 볼 수 있는데 아쉽다. 금요일에는 민쿠스(L. Minkus)의 발레 돈키호테(Don Quixote)’ 그리고 토요일에는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을 한다. 로엔그린은 결혼식 때 신부입장곡으로 쓰이는 결혼행진곡으로 유명한 오페라. 사실 일요일에도 로엔그린을 올리니 두 번을 반복해서 볼 수도 있다. 무리를 해서 월요일에 갈까도 고민하는 것이 이 이유다.

 

그만큼 하루 종일 공연을 바쁘게 쫓아다니면서도 좋았다는 것이다.

 

 

by 경계넘기.